Zero to one
- 2015-02-03 (modified: 2025-04-26)
Peter Thiel의 강연을 정리한 책. 대체로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고, 덕분에 생각을 많이 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며 불편한 마음이 느껴질때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고민하게 되니까.)
전체적으로 구성이 좀 엉성하고 뒤로 가면 점점 더 블로그 포스트 모아놓은 느낌이 나는 점이 아쉽다. 그리고 저자 이름 값에 비해 책의 내용도 밀도가 낮고,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 과장된 수사로 마치 대단한 이야기인양 포장하는 느낌도 크다.
글쓰기에 재주가 없거나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한 모양이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라, 독점은 좋고 경쟁은 나쁘다
책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 있던 것을 확장하는 일(1 to n) 말고, 없던 것을 창조하는 일(0 to 1)을 하라.
- 그래야 독점 기업을 만들어서 큰 돈을 벌 수 있고, 큰 돈을 벌어야 세상을 크게 이롭게 할 수 있다.
없던 것을 창조하라는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기존에 비해 10배 이상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구글의 검색엔진은 야후보다 10배 이상 좋고, 애플의 제품도 기존 제품들에 비해 10배 이상 좋다고 한다.
“10배”라는 숫자는 그냥 하는 말이고, “충분히 좋은걸 만들어야 한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결국 “Zero to One”이라는 것은 충분히 좋은거라는 뜻.
독점(monopoly)을 하여 큰 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독점이란 의도적으로 경쟁를 차단하거나 정부와 결탁하여 다른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 행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분야에서 너무나 뛰어나서 다른 회사들이 경쟁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즉, 10배 이상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랑 똑같은 뜻이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라. 독점은 좋은 것이고 경쟁은 나쁜 것이다”라는 주장은 일견 대단히 파격적인데, 그래서 내가 내 사업에서 구체적으로 뭘 해야할지를 숙고하며 내용을 잘 따져보면 실상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충분히 좋은 것을 만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충분히 좋은 것을 만들지 못하면 경쟁이 치열해서 돈을 못 벌고 고생만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다.
실제 책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해보면 이런 식이다:
만약 지속적으로 가치를 만들고 싶으면 차별성 없는 사업을 하지 마세요. (If you want to create and capture lasting value, don’t build on an undifferentiated commodity business.)
닷컴 버블에서의 교훈
2장 “Party Like It’s 1999”의 내용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의 닷컴 버블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와중에 페이팔은 어떻게 사업을 했는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전반부에서는 이 시기에 얼마나 말도 안되는 스타트업들이 많았는지, 묻지마 투자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그 와중에 본인이 창업한 페이팔은 “정상적”인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뭐냐하면…
- 회원 가입시 10를 주는 방식으로 회원을 끌어모은다.
- 회원이 충분히 많아지면 거래 수수료를 통해 돈을 벌기 시작할 수 있다.
는 것이었다. 남들은 닷컴 버블에 미쳐서 불합리한 사업 모델로도 투자를 받았지만, 본인들은 합리적 계획을 세웠기에 잘 될 수 있었단다(“But we thought our huge costs were sane: given a large user base, PayPal had a clear path to profitability by taking a small fee on customers’ transactions.”).
하지만 정말 그런가?
“사용자가 충분히 많으면 X를 할 수 있다”는 식의 사업 모델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초기에 어떻게 사용자를 모을 것인가에 대해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그 합리적 계획이라는 것이 “회원 가입하면 $10를 드립니다, 초대하면 또 드려요.”라니. 막대한 돈을 들여서 충분한 회원을 모았다고 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억지로 모은(in-organic) 사용자 기반이 활발하게 서비스를 이용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보통은 대부분 비활성 사용자가 되어 버린다.
페이팔이 잘 될 가능성이 높았던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면 그런 부분을 더 언급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게다가, 이 계획이 당시의 다른 닷컴들과 별 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은 저자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We knew we’d need more funding to reach that goal. We also knew that the boom was going to end. Since we didn’t expect investors’ faith in our mission to survive the coming crash, we moved fast to raise funds while we could. On February 16, 2000, the Wall Street Journal ran a story lauding our viral growth and suggesting that PayPal was worth 100 million the next month, our lead investor took the Journal’s back-of-the-envelope valuation as authoritative. (Other investors were in even more of a hurry. A South Korean firm wired us $5 million without first negotiating a deal or signing any documents. When I tried to return the money, they wouldn’t tell me where to send it.) That March 2000 financing round bought us the time we needed to make PayPal a success. Just as we closed the deal, the bubble popped.
요약하자면, 상기 회원 유치 계획을 실현하려면 큰 돈이 필요했고, 곧 닷컴 버블이 꺼질 것 같아서 급히 투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WSJ에서 페이팔에 대해 무려 5억 달러라는 가치평가를 내려주는 바람에, 또 마침 묻지마 투자자들이 WSJ의 별 근거없는(back-of-the-envelope) 가치평가를 그대로 믿어주는 바람에 투자를 땡길 수 있었다는 자랑이다.
한 사람의 사업가가 “우리는 이렇게 해서 돈을 벌었어요, 아싸” 정도로 술마시며 자랑할만한 이야기로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 특히 어린 학생들(이 책은 스텐포드 강연을 정리한 것)에게 교훈이랍시고 전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그 다음에 갑자기 애자일/린 방식을 비판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은 이렇다:
- It is better to risk boldness than triviality (기왕 위험을 감수할 것이면 작은거 말고 큰거 하라)
- A bad plan is better than no plan. (나쁜 계획이라도 있는게 무계획보다 좋다)
- Competitive markets destroy profits. (경쟁적 시장은 이윤을 파괴한다)
- Sales matters just as much as product. (제품만큼이나 세일즈도 중요하다)
1번은 “점진적 개선”으로는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가정을 깔고 있는데 나는 당연히 이 가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저는 진화론을 사..사..좋아합니다)
2번은 아래와 같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Stay lean and flexible. All companies must be “lean,” which is code for “unplanned.” You should not know what your business will do; planning is arrogant and inflexible. Instead you should try things out, “iterate,” and treat entrepreneurship as agnostic experimentation.
“린”은 “계획없음”이라는 뜻이고, 장님 꼬끼리 만지듯 눈먼 실험을 반복하는 방식이란다.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계획이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에 해서는 안되고, 항상 해야한다는 것이 린/애자일 접근법인데, 저자는 큰 오해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3번과 4번은 동의. 사실 반대하기 어려울만큼 당연한 말이 아닌가.
4번에 대한 내 생각을 부연하자면 이렇다. 둘 다 중요하지만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후진 제품을 팔러다니면 돈은 벌지 모르지만 고객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기기만이 필요하다. 망할 제품에 광고를 해서 일시적으로 흥해 “보이게” 만들면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다. 빨리 망하지 못하고 천천히 망하게 되니까. 빨리 망해야 빨리 배우고 다음 시도를 할 수 있을텐데. 인생은 한 판이 아니다. 창업도 마찬가지. 그저 조금 크게 도는 하나의 반복 주기(iteration)에 불과하다. 게임 이론(game theory)에 의하면 반복되는 게임에서의 효과적인 전략과 일회성 게임에서의 효과적인 전략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이 일회성 게임이라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데 그건 최적 전략이 아니다.
마무리하자면, 물론 나는 애자일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완전한 제품을 만든 후에 세일즈나 광고를 시작해야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약간 만들고 그에 맞춰 약간 세일즈하고, 그 동력으로 조금 더 개선하기를 반복해야 한다.
독점, 경쟁, 혁신
3장 “All Happy Companies are Different”에서는 독점을 찬양하고 4장 “The Ideology of Competition”에서는 경쟁을 비판한다.
이렇게만 말하면 저자가 대단히 나쁜 사람인 것 같지만, 저자가 “독점”을 정의하는 방식을 놓고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독점을 하라는 말은 그저 남들보다 10배 좋은 것을 만들라는 말일 뿐이니까.
경쟁이 나쁜 이유는 경쟁을 하면 이윤이 줄어들고 이윤이 줄어들면 삶이 각박해지기 때문이란다. 그 예로 한 레스토랑 주인이 다른 레스토랑들과 지나치게 치열하게 경쟁을 하다가 “Michelin’s star system”에서 별점을 낮게 받고 결국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반면 독점은 좋은 것인데, 독점 기업인 구글은 이윤을 많이 남기니까 직원들의 삶도 윤택해지고, 제품도 계속 좋아지고, 따라서 세상에 더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저자의 정의상 독점은 좋을 수 밖에 없는데, 저자가 말하는 독점은 너무나 뛰어나지만 항상 혁신하고 부당하게 경쟁을 회피하려 하지도 않고 정부와 불법적인 관계도 맺지 않는, 그저 자기 일을 너무 잘하는 기업일 뿐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독점기업(creative monopolies)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돈도 있고, 여유롭게 혁신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골때리는 점은, 애플이라는 창의적 독점 기업이 iOS라는 혁신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를 물리치고 세상을 좋게 바꿨다는 얘기는 하는데, 애초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독점 기업이 확고한 독점적 지위를 영위하는 동안 무슨 짓들을 했는지(특히 인터넷 익스플로러 어쩔?)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따져보면 진보는 독점 기업에 의해 이루어져왔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충분한 혁신을 이루면 당분간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될테니 혁신과 독점 사이의 상관성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독점기업이 되어야만 혁신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순서가 잘못되었다. “혁신을 했기 때문에 독점기업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인과가 아닐까.
멋은 있는데 별 영양가 없는 문장들은 계속 이어진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Sometimes you do have to fight. Where that’s true, you should fight and win. There is no middle ground. Either don’t throw any punches, or strike hard and end it quickly. (가끔은 싸움(경쟁)을 해야한다. 싸움을 해야만 한다면 싸워서 이겨라. 중간은 없다. 애초에 싸움을 시작하지 말거나, 할거면 크게 한 방 날려서 빨리 끝내라)
호그와트 마법학교 선생이 해리 포터에게 해줄만한 대사로는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떤가? “이제부터 시작할테니 싸울지 말지 정하세요”라는 식으로 시작되는 경우는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정신 차리고보면 어느새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 대부분이 아닌가. (책에도 언급되지만 저자가 창업한 PayPal도 마찬가지로 초기에 Elon Musk의 X.com과 경쟁하고 있었다.)
5장에는 Zynga 사례처럼 MAU(monthly active user) 같은 단기 지표에 과하게 집중하느라 장기적인 가치를 놓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적극 동의한다.
성공과 운
6장 “You are not a Lottery Ticket”에서는 성공과 운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다. (여기서부터 슬슬 블로그 포스트 모아놓은 느낌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사업적 성공에서 운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이러하다:
Every company starts in unique circumstances, and every company starts only once. Statistics doesn’t work when the sample size is one. (모든 회사는 독특한 상황에서 시작하고, 그 시작이라는 것은 반복되지 않는다. 통계는 표본의 수가 1인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정량적 평가를 할 수 없으니, 기왕이면 긍정적인 믿음을 가져보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논리도 나온다:
If you believe your life is mainly a matter of chance, why read this book? (삶이 주로 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다면 왜 이 책을 읽고 있는가?)
나는 삶이 주로 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데, 이 책을 읽고 있다. 내 삶의 99%가 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1%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노력도 해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 아무튼, 저자는 미래에 대한 태도를 두 가지로 나눈다:
-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고 믿는 부류 (indefinite future)
- 우리가 어찌할 수 있다고 믿는 부류 (definite future)
이 각 태도를 다시 둘로 나누는데(긍정적/부정적) 중요한건 유럽은 발전 없이 멈춰있고, 중국은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미국의 테크 스타트업만이 긍정적 미래를 믿으며 나아간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심지어 테크 스타트업 중에서도 소프트웨어가 아니면 안쳐주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바이오 스타트업은 이렇다고 한다:
Biotech startups are an extreme example of indefinite thinking. Researchers experiment with things that just might work instead of refining definite theories about how the body’s systems operate. Biologists say they need to work this way because the underlying biology is hard.
잘은 모르지만 생물학을 공부하는 지인들, 생물정보학 회사에서 몇 년간 일하며 주워들은바 등에 의하면, 생물학/생물정보학/생리학/의학의 어떤 측면은 저자가 언급한 접근법을 쓰는 것 같다. 하지만 저런 소리를 용감하게 하기 전에 자신이 현재 대표로 있는 Palantir Technologies이라는 인공지능 회사에서 어떤 기술들을 쓰고 있는지 좀 생각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이니 기계학습이니 하는 분야의 수많은 알고리즘들이 저런 식으로 작동한다는걸 알고나 있을까?
또한, 저자에 의하면 미래에 대해 알 수 있으면 린스타트업에서 말하는 MVP(Minimum viable product) 같은걸 만들 필요가 없다:
Forget “minimum viable products” - ever since he started Apple in 1976, Jobs saw that you can change the world through careful planning, not by listening to focus group feedback or copying others’ success.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회사에 스티브 잡스가 없다는 점이다. 회사마다 스티브 잡스가 한명씩 있으면 다 필요없고 그냥 그 사람이 하자는대로 하면 되겠지. 이미 성공을 경험한 사업가,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저런 소리를 하고 다녀도 되겠지만 지금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저 조언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일지 의문이다.
본인이 투자하거나 관여한 수많은 스타트업들을 돌이켜보며 정말로 위와 같은 교훈을 얻은 것이라면 이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심각하게 왜곡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수많은 실패들(orkut 안녕? wave 안녕?)이 안 보이는건가? 자신이 창업한 페이팔은 애초에 팜파일럿 사용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돈을 이체할 수 있게 해주는 멍청한 서비스가 아니었던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많은 사례들이 대체로 이런 식인데, 본인의 주장에 부합되는 측면만 설명하고 넘어가는 식이다. 세상에 스타트업과 서비스가 넘쳐나는데 입맛에 맞는 사례만 언급할 것이라면 무슨 주장인들 못할까.
창업자는 가난하게, 일은 한자리에 모여서
9장과 10장은 창업 초기, 채용, 문화 가꾸기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설립과 관련해서는… 시작은 한 번 뿐이고, 시작을 제대로 못하면 잘될 수 없으니 잘 하라고 조언한다. 당연히 뭐든 잘 하면야 좋겠지만 나는 강한 근거가 있기 전에는 “세상에 한 번 뿐이고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정” 같은 것들을 대체로 믿지 않는다.
또 직원들이 풀타임으로 한 장소에 모여서 일할 것을 권장한다:
As a general rule, everyone you involve with your company should be involved full-time…. Part-time employees don’t work. Even working remotely should be avoided, because misalignment cap creep in whenever colleagues aren’t together full-time, in the sample place, every day.
취지에 공감한다. 초창기일수록 구성원들이 자주 생각을 공유하고 맞춰가는 것이 중요할테니까. 만약 원격 근무를 하려면 위에서 지적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보완할 장치들을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창업자들은 월급을 너무 많이 받지 않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있다:
A cash-poor executive, by contrast, will focus on increasing the value of the company as a whole.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만 국내의 양아치같은 VC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어서 부연을 좀 하자면, 저기에서 말하는 “가난”이란 연봉 $150,000 (대략 2억원)을 넘지 않는 수준을 말한다.
지분에 대해서는 되도록 비밀로 하라고 하는 말도 나온다:
Since it’s impossible to achieve perfect fairness when distributing ownership, founds would do well to keep the details secret.
이 조언에는 아직 동의하지 않는데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 좀 더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다음은 각 구성원의 역할을 명확하게 하라는 조언:
The best thing I did as a manager at PayPal was to make every person in the company responsible for doing just one thing…. Most fights inside a company happen when colleagues compete for the same responsibilities. Startups face an especially high risk of this since job roles are fluid at the early stages. Eliminating competition makes it easier for everyone to build the kinds of long-term relationships that transcend mere professionalism.
한 가지에만 집중하게 역할을 명확히 조율하라는 말. 나는 정확히 반대로 하는 중이다. 당장 효율이 낮더라도 일을 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교집합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면 빠르게 자주 일어나는 것이 좋다.
마무리
책을 읽는 내내, 몇 년 전에 한 논문에서 읽었던 아래 문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비정규적이고 예측불가능한 환경에서는 진정한 직관력이 길러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단지 운이 좋아서 성공적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운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력에 대한 환상을 갖거나 과도한 확신에 빠지기 쉽다. (Although true skill cannot develop in irregular or unpredictable environments, individuals will sometimes make judgments and decisions that are successful by chance. These “lucky” individuals will be susceptible to an illusion of skill and to overconfidence.)
저자는 분명 출중한 사람일 것이다. 아무 강점도 없는 사람이 순전히 운이 좋아서 연속적으로 사업을 성공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성공이 성공을 부르고 돈이 돈을 부르는 환경에 매몰되어 치열하게 살다보면, 또 지나치게 큰 성공을 연속으로 경험하게 되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갖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 같다.
이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이다. 끝없이 스스로에 대해 의심하고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참고로 나는 우리 회사가 하려는 일에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큰 가치를 만들 것이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저자가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나는 우리 회사가 그 일을 해내리라고는 별로 믿지 않는다. 나는 우리 회사가 3년 내에 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럴거면 왜 사업을 하나?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 회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려고 하고 있고, 이 일을 잘 해내면 세상도 좋아지고 돈도 벌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해내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언젠가는 될 일이다.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망하기 때문이다. 다들 나름 잘난 사람들이 모여서 나름 열심히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망한다. 따라서 나도 망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와중에 내가 믿는 것은 1) 성공할 확률보다 망할 확률이 높지만 다른 스타트업들의 평균에 비해서는 망할 확률이 약간 낮을 것 같다는 점, 2) 기왕 망할거면 최대한 많이 배우고 그 와중에 작은 가치라도 만들고 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3) 다음 시도에서는 망할 확률이 조금 더 낮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업의 성공에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고 믿지만, 내 노력으로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1%라도 있으면 노력을 해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난 이런 생각이 Peter Thiel의 단순한 이분법(미래는 운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미래를 우리가 정할 수 있다고 믿으면 인생을 걸고 큰 일을 벌이세요)에 비해 더 현실적이고 유용하다고 믿는다.